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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람보르기니 V12 미니밴 '제네시스' 콘셉트 |
오늘날 미니밴은 SUV의 인기에 밀려 주변부로 밀려났지만, 1980년대 중반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닷지 캐러밴과 플리머스 보이저의 성공 이후 미국은 단숨에 ‘미니밴의 나라’가 됐고, 이 흐름은 유럽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으로 번졌다. 실용성과 공간을 앞세운 이 차급은 가족용 차량의 기준을 바꿔 놓았다.

이 변화를 누구보다 빠르게 감지한 곳 중 하나가 이탈리아의 디자인 하우스 베르토네였다. 미우라, 쿤타치, 에스파다 등 람보르기니의 전설적인 모델을 탄생시킨 베르토네는, 미니밴이라는 실용적인 세그먼트에 ‘성능과 극단적인 개성’을 결합하는 실험을 시도한다.

배경에는 당시 람보르기니의 불안정한 상황이 있었다. 1987년, 파산 직전이던 람보르기니는 크라이슬러에 인수됐고, 베르토네는 오랜 협업 관계가 끊길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이에 베르토네가 꺼내 든 카드는 대담했다. 람보르기니가 직접 요청하지도, 관여하지도 않은 ‘람보르기니식 미니밴’을 먼저 만들어 세상에 던지는 것이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1988년 토리노 모터쇼에 등장한 제네시스(Genesis) 콘셉트다. 겉모습만 보면 미래적인 미니밴이지만, 디테일은 베르토네 특유의 과감함으로 가득했다. 앞좌석 도어는 위로 열리는 걸윙 방식이었고, 전면 유리와 펜더까지 함께 들리는 구조였다. 거대한 유리온실 구조는 차체 색상의 스트립으로 분할돼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실내 역시 평범한 미니밴과는 거리가 멀었다. 앞좌석은 휠하우스 위에 놓인 버킷 시트였고, 조수석은 180도 회전이 가능했다. 중앙 좌석은 접어 공간을 확장할 수 있었으며, 전체 구성은 ‘가족용’보다는 실험적인 라운지에 가까웠다. 쿤타치를 연상시키는 헤드레스트 디자인은 이 차가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는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하지만 이 콘셉트가 진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안내판에 적힌 단 한 줄, “V12 엔진 탑재”였다. 제네시스에는 람보르기니 쿤타치 콰트로발볼레에서 가져온 5.2리터 V12 엔진이 실제로 장착돼 있었고, 최고출력은 455마력에 달했다. 휠베이스가 에스파다와 동일한 점을 고려하면, 개조된 에스파다 섀시를 기반으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현실은 상상만큼 극적이지 않았다. 약 2톤에 달하는 차체 중량에 3단 자동변속기가 조합되면서, V12의 잠재력은 온전히 발휘되지 못했다. 제네시스는 ‘달릴 수 있는 콘셉트카’였지만, 람보르기니다운 성능을 보여주기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베르토네의 마지막 승부수였던 이 프로젝트는 큰 화제를 모았지만, 크라이슬러나 람보르기니 어느 쪽의 마음도 움직이지는 못했다. 이후 베르토네는 다시는 람보르기니를 디자인하지 못했고, ‘람보르기니 미니밴’이라는 기이한 상상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비록 양산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제네시스 콘셉트는 지금 다시 봐도 매혹적이다. 슈퍼카 브랜드, 미니밴, V12라는 조합이 공존할 수 있었던 마지막 시대의 산물이자, 1980년대 자동차 산업이 얼마나 대담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실험이기 때문이다.
더드라이브 / 조윤주 기자 auto@thedr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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