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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에서 현대차 기아 도난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는 위스콘신 ABC 뉴스 캡처 |
현대차와 기아의 미국 차량 도난 사태를 둘러싼 대규모 소송에서 한국 본사까지 직접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이 다시 열렸다.
미국 제9연방 항소법원은 지난 14일 현대차와 기아 한국 본사를 상대로 제기된 보험사들의 소송을 대인관할권 부족을 이유로 기각했던 캘리포니아 연방 법원의 결정을 뒤집었다.
이번 소송에는 약 200개 보험사가 참여하고 있다. 보험사들은 이모빌라이저가 장착되지 않은 일부 현대·기아 차량이 도난되거나 도난 시도로 파손되면서 지급한 보험금과 관련 비용이 10억 달러(약 1조 3,840억원)를 넘어섰다며 이를 제조사 측에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쟁점은 한국 본사인 현대차와 기아를 미국 법원이 직접 재판할 수 있느냐였다. 앞서 캘리포니아 중부 연방 법원은 한국 기업들이 미국 자회사를 통해 차량을 판매했다는 점 등을 들어 한국 본사에 대한 대인관할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항소법원은 다른 판단을 내렸다.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현대차가 미국으로 보낸 차량의 70% 이상, 기아는 약 77%가 캘리포니아 항구를 통해 들어왔다. 여기에 미국 시장을 위해 별도로 설계된 차량을 지속적으로 공급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한국 본사 역시 캘리포니아 시장을 의도적으로 겨냥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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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아 보이즈 도난 사건 |
재판부는 특히 한국 제조사가 직접 캘리포니아에서 차량을 판매하지 않았더라도 수천 건의 차량 선적을 캘리포니아 항만으로 보내고 미국 전용 사양을 설계했다는 점을 중요하게 봤다.
다만 이번 판결이 보험사들의 10억 달러 청구를 인정했다는 뜻은 아니다. 항소법원은 한국 본사와 캘리포니아 사이에 충분한 연관성이 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실제로 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이 합리적인지에 대해서는 지방법원이 다시 판단하도록 사건을 돌려보냈다. 따라서 현대차와 기아의 최종 배상 책임 역시 앞으로 진행될 본안 재판에서 가려질 예정이다.
이번 소송의 출발점은 일부 미국 판매 차량에 엔진 이모빌라이저가 빠졌다는 점이다. 이모빌라이저는 차량 키의 전자정보를 확인해 정상적인 키가 아니면 시동이 걸리지 않도록 하는 도난방지 장치다. 보험사들은 2011~2022년형 일부 현대·기아 차량에 이 장치가 적용되지 않아 차량이 쉽게 도난될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가 폭발한 것은 이른바 ‘기아 보이즈(Kia Boys)’ 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하면서다. 간단한 도구를 이용해 특정 현대·기아 차량의 시동을 거는 방법이 퍼지면서 미국 여러 도시에서 관련 차량 도난이 급증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이미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차량 소유자들과 진행한 집단소송에서는 최대 1억 4,500만 달러(약 2,007억원) 규모의 보상 기금에 합의했고, 2025년에는 미국 35개 주와 워싱턴DC 등이 참여한 합의에서 900만 달러(약 125억원)를 지급하고 대상 차량에 추가 도난방지 장치를 제공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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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아 보이즈 도난 사건 |
문제는 도난 위험이 단기간에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UCLA 제프리 브랜팅엄 교수 연구팀이 최근 국제학술지 ‘International Journal of Forecasting’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이모빌라이저가 없는 현대·기아 차량의 도난 증가 영향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최소 2042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연구진은 차량이 노후화돼 중고차 시장으로 이동할수록 취약 차량이 저소득 지역에 집중되면서 도난 발생 지역 역시 함께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에서는 그 영향이 2050년까지 지속되는 시나리오도 제시됐다.
이번 판결의 의미는 단순히 현대·기아 차량 도난 소송 하나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시장 전용 차량을 설계하고 특정 미국 항만을 통해 대규모로 차량을 지속 공급하는 해외 제조사라면 미국 현지 자회사 뒤에 모기업을 완전히 분리해 두는 것만으로 법적 책임 범위를 제한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현대차와 기아 입장에서도 ‘기아 보이즈’ 사태는 이미 지나간 사건이 아니다. 차량 소유자와 주 정부에 이어 이번에는 보험업계가 10억 달러가 넘는 비용을 청구하고 있다. 몇 달러 수준의 도난방지 장치를 적용하지 않았던 결정이 10여 년이 지나 거대한 법적 비용으로 되돌아오는 모습이다.
더드라이브 / 조하은 기자 auto@thedr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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