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자동차 업체의 미국 현지 생산에 사실상 문을 열었다. 중국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짓고 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다면 자동차를 생산하는 데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을 불과 며칠 앞두고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BYD와 지리 등 중국 자동차 업체가 미국 현지 생산을 통해 시장 진입에 성공할 경우 포드와 GM뿐 아니라 현대차·기아에도 새로운 경쟁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중국 자동차 업체의 미국 진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중국이 들어와 미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 공장을 짓겠다면 괜찮다”라는 취지로 말했다. 다만 조건은 미국에 공장을 짓고 미국인을 고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수십 년 전 미국에 공장을 건설한 사례를 언급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인을 위한 일자리라고 강조했다.
반면 중국에서 완성된 자동차를 미국으로 직접 수출하거나 멕시코에서 생산한 중국산 차량이 미국으로 들어오는 것은 여전히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산 자동차에 대한 장벽을 제거할 경우 미국 자동차 시장이 중국 업체에 잠식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특히 멕시코를 우회 생산기지로 활용해 미국 시장에 진입하려는 중국 업체들을 강하게 견제해왔다.
문제는 미국 현지 생산까지 허용할 경우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BYD와 지리, 체리 등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분야에서 공격적인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이들이 관세 장벽을 피하고 미국 공장에서 직접 차량을 생산하기 시작한다면 미국 시장을 사실상 보호해왔던 높은 진입 장벽 가운데 하나가 무너질 수 있다.
특히 이럴 경우 현대차·기아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중심으로 전기차 현지 생산을 확대하고 있으며, 현대차와 기아 모두 미국에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판매를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 BYD나 지리 같은 중국 업체가 미국 현지 생산까지 시작한다면 미국 소비자를 놓고 현대차·기아와 중국 업체가 가격과 배터리 기술, 전동화 상품성을 놓고 직접 경쟁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동안 현대차·기아는 중국산 전기차가 사실상 미국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면서 중국 업체와의 직접적인 경쟁을 피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미국에서 만들고 미국인을 고용하면 된다’라는 원칙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경우 이 같은 보호막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 자동차 업체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포드와 GM, 스텔란티스 입장에서는 중국 브랜드 차량이 수입차가 아니라 ‘미국산 자동차’ 형태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는 중국 업체의 진입 가능성을 놓고 이미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포드가 중국 기업들과 맺은 협력 관계를 강하게 문제 삼고 있다. 션 더피 미국 교통장관은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에게 서한을 보내 CATL과 지리, BYD 등 중국 기업과의 협력 관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제기했다.

문제가 된 대표적인 사례는 미시간주 마셜의 포드 배터리 공장이다. 포드는 중국 CATL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기술을 라이선스 방식으로 도입했다. 포드는 해당 공장을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며 미국인을 고용하기 때문에 중국 기업과의 합작공장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더피 장관은 미국 자동차 산업이 중국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포드가 스페인에서 중국 지리와 협력하고 있는 점과 BYD와 하이브리드 관련 부품 협상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진 사실도 문제로 지적됐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도 메시지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포드가 중국 기업들과 기술 및 생산 협력을 확대하는 것을 국가 안보 문제로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중국 자동차 업체가 직접 미국에 투자하고 미국인을 고용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오는 9월 24일 시진핑 중국 주석의 미국 방문이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인공지능을 비롯한 주요 경제·산업 현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자동차 산업 역시 핵심 협상 의제 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미국 현지 생산을 조건으로 중국 자동차 업체의 미국 진출이 현실화될 경우 미국 자동차 시장의 경쟁 구도는 지금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포드와 GM, 스텔란티스뿐만 아니라 이미 미국 현지 생산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한 현대차·기아까지 BYD와 지리 등 중국 업체와 같은 시장에서 정면 승부를 벌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높은 관세와 규제로 막혀 있던 중국 자동차 업체의 미국 진출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미국 자동차 산업뿐 아니라 현대차·기아에도 적지 않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더드라이브 / 조하은 기자 auto@thedr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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